오는 날의 수채화

7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몰래 만나기로 했어요.

선생님의 비밀 쪽지를 받은 아이들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처럼 쪽지를 손에 꼭 쥐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어요.

비밀 쪽지에는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너와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같이 가 주겠니?" 라고만 썼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과 통화를 하며 만남에 대한 취지를 설명해 드렸고, 역시 아이들에게는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마침 새벽부터 비가 내렸어요. 시원스럽게 내리던 비가 무더위를 조금 가져가 주었어요.

우리의 목적지는 서점, 서점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아이들이 먼저 걸어가자고 하더군요.

"세상 사람 모두가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아이들과 걷는 비오는 길이 좋아서 제가 옛날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평상시 너무 말이 없는 아이들, 그래서 한 학기 내내 제 속을 태우던 녀석들이 함박 웃음을 짓더군요.

우산을 폈다가 접었다가, 노래를 불렀다가 웃었다가, 그리고 제 손을 번갈아가며 잡고서 서점에 도착했어요.

읽고 싶은 책 한 권씩 고르라고 했더니 만화책 앞에서만 서성거리더군요.

조심 조심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책을 고르도록 도와주었어요.

운동감각이 뛰어난 현서에게는 축구 영웅에 관한 책을,

동물이나 곤충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른 재준이에게는 공룡에 관한 책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에서 허우적거리는 승안이에게는 국어 공부에 대한 책을 권해주었어요.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2시간 정도,

희망교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많은 의문을 가졌어요. 역차별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계획을 세우고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지면서 그 모든 의문은 바로 저 자신한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첫술에 맛을 느낄 수는 있겠지요.

저는 오늘 희망교실이라는 아주 귀한 음식의 맛을 보았어요.

학교에 돌아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다음에 또 만나자 약속했어요. 

          

 

 

 

 

 

 

'뉴스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학기 개강 파티  (0) 2013.09.23
어깨 동무 내 동무  (0) 2013.09.03
주홍빛 봉숭아로 추억을 물들여요!  (2) 2013.07.14
희망교실 뉴스기사 소개  (0) 2013.07.04
두근두근 선생님 집으로!  (0) 2013.07.0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